01. 별이 내린 밤
1. 천문대의 마지막 여름
별멎음 기념일의 밤.
주인공은 관측실 바닥에 펼쳐 놓은 상자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상자 옆면에는 부모님이 남겨 둔 글씨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보관 기록 3
광학 장비 부속
폐기 전 확인
해야 할 일은 단순했다. 기록은 연도별로 나누고, 쓸 수 있는 장비와 버릴 장비를 구분한 다음, 천문대를 넘겨받을 사람에게 열쇠를 건네면 된다.
하지만 며칠째 상자의 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주인공은 오래된 관측 일지를 한 장 넘겼다가 다시 덮었다. 별멎음 이전의 기록에는 관측 시각과 날씨, 별의 밝기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부모님의 글씨 사이사이에는 어린 시절 자신이 낙서한 의미 없는 선도 섞여 있었다.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부모님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정리는 잘하고 있니? 다음 주에는 중개인이 다시 방문할 거야. 너무 늦게까지 있지 말고.
주인공은 답장을 쓰려다가 화면을 껐다.
‘거의 끝났어.’
그 말은 어제도 보냈고, 사흘 전에도 보냈다.
관측실의 둥근 천장은 닫혀 있었다. 돔이 닫힌 뒤로는 바람 소리도, 장비가 회전하는 낮은 진동도 들리지 않았다. 남은 것은 벽시계의 초침과 서류가 스치는 소리뿐이었다.
주인공은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산 아래의 도시는 기념일답게 평소보다 늦게까지 밝았다. 하늘에는 달이 떠 있었지만, 그 주위는 텅 비어 있었다. 별멎음 이전에는 이곳에서 맨눈으로도 수많은 별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주인공 역시 그 광경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오래된 사진을 떠올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별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적어도 주인공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관측실 뒤편에서 짧은 기계음이 울렸다.
삑.
주인공은 고개를 돌렸다.
전원이 꺼져 있던 주 관측 단말기의 작은 표시등이 파랗게 깜박이고 있었다.
2. 없는 별을 향한 망원경
처음에는 남아 있던 예비 전력이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측 장비의 전원은 오래전에 차단해 두었다. 매각을 준비하면서 부모님과 함께 분전반까지 확인했다. 실수로 작동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주인공이 단말기에 다가가자 검은 화면 중앙에 흰 선 하나가 나타났다. 곧이어 오래된 관측 프로그램의 초기 화면이 떠올랐다.
SYSTEM CHECK
DOME — ONLINE
TELESCOPE — ONLINE
“잠깐.”
주인공이 정지 명령을 누르기도 전에 천장 위에서 굳어 있던 톱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웅.
몇 년 동안 닫혀 있던 돔의 틈이 천천히 벌어졌다. 묵은 먼지가 떨어지고, 밤의 찬 공기가 관측실 안으로 밀려들었다. 둥글게 열린 천장 너머로 별 하나 없는 밤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망원경도 뒤늦게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움직였다. 경통이 천천히 위로 들리고, 회전축이 특정한 방향을 향해 멈췄다.
주인공은 반사적으로 좌표값을 확인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쌍둥이자리 부근이었다.
화면 위의 별자리 지도에는 별멎음 이전의 좌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망원경의 조준점은 쌍둥이자리의 한 지점과 정확히 겹쳐 있었다.
관측 버튼을 누르지도 않았는데 수신 파형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잡음뿐이었다. 그러나 불규칙하게 흔들리던 선이 일정한 간격으로 높아지기 시작했다.
한 번.
잠시 멈췄다가 다시 한 번.
마치 심장박동 같은 신호였다.
주인공이 화면에 손을 가져간 순간, 이번에는 등 뒤에서 빛이 번졌다.
관측실 바닥에 가느다란 청록색 선이 그어지고 있었다. 하나의 선은 두 갈래로 갈라지고, 갈라진 선은 다시 여러 개의 점을 이었다. 오래된 성도에서 보았던 쌍둥이자리의 형태와 비슷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빛의 선들이 관측실 중앙에서 하나로 모였다.
그 중심이 밤하늘보다 밝게 빛났다.
주인공은 눈을 가렸다.
바람도 없는데 서류와 먼지가 원을 그리며 떠올랐다. 망원경의 경통이 짧게 떨리고, 모든 조명이 동시에 꺼졌다.
어둠이 찾아온 것은 한순간이었다.
곧 바닥의 문양이 다시 빛났다.
빛의 중심에서 사람의 윤곽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흐릿한 그림자에 가까웠던 형태가 머리카락과 손끝, 옷자락의 순서로 선명해졌다.
은백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소녀였다.
소녀의 몸이 완전히 형태를 갖춘 순간, 바닥의 문양이 깨지듯 흩어졌다. 발을 디딜 곳을 찾지 못한 소녀가 앞으로 기울었다.
주인공은 생각할 틈도 없이 몸을 뻗어 그녀를 붙잡았다.
소녀의 허리춤에 매달린 황동 나침반이 환하게 빛났다.
청록색 빛 한 줄기가 나침반에서 주인공의 손목까지 이어졌다가, 피부 아래로 스며들듯 사라졌다.
차갑거나 뜨겁지는 않았다.
다만 아주 먼 곳에서 울린 종소리가 가슴 안쪽까지 전해진 것 같은 감각이 남았다.
소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청록색 눈동자가 주인공을 향했다. 소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기보다 먼저 주인공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을 만난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다행이다. 이번에는 제대로 도착한 것 같아서.”
소녀는 주인공의 팔을 붙잡고 몸을 바로 세웠다. 아직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듯 잠시 휘청였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옷자락을 정리했다.
“내 이름은 엘레나야.”
3. 엘레나
주인공은 엘레나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넌 누구야?,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금방 말했듯이 내 이름은 엘레나고, 들어온 방법은…….”
엘레나는 열린 돔과 바닥에 남은 빛의 흔적을 번갈아 살폈다.
“설명하면 조금 길어질 것 같은데.”
“경찰서에서 설명하는 것보다는 지금 하는 게 짧을 거야.”
주인공이 휴대전화를 꺼내려 하자 엘레나의 미소가 아주 조금 굳었다. 그녀는 전화를 빼앗거나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대신 두 손을 가볍게 들어 보이며 말했다.
“경찰에 신고하는건 안 좋은 선택일거야. 그래도 이해는 되네. 나라도 천장에서 사람이 떨어지면 신고부터 할 테니까. ” “정확히는 천장보다 훨씬 위에서 왔지만.”
엘레나는 열린 돔 너머를 올려다보았다.
달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밤하늘이었다.
방금까지 웃고 있던 그녀의 얼굴에서 아주 잠깐 표정이 사라졌다. 그 짧은 침묵은 낯선 장소에 떨어진 사람의 당황이라기보다, 익숙했던 무언가가 사라진 광경을 직접 확인한 사람의 허탈함에 가까웠다.
하지만 엘레나는 곧 평소의 미소를 되찾았다.
“정말 하나도 보이지 않는구나.”
“뭐가?”
“우리들의 별이.”
주인공의 손가락이 신고 버튼 위에서 멈췄다.
엘레나는 허리춤에서 황동 나침반을 풀어 손바닥 위에 올렸다. 낡은 물건처럼 보였지만 유리 안쪽에는 방향을 나타내는 글자도, 일정한 눈금도 없었다. 대신 길이가 다른 바늘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짧은 바늘은 한 방향을 향해 가늘게 떨고 있었고, 긴 바늘은 목적지를 잃은 것처럼 계속 원을 그렸다.
“다시 제대로 소개할게.”
엘레나는 장난스러운 기색을 거두고 주인공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엘레나. 너희가 쌍둥이자리라고 부르는 별자리와 이어져 있는 별의 정령.”
“별의 정령?”
주인공은 관측 단말기를 돌아보았다.
조준점이 멈춘 좌표 옆에 뒤늦게 식별 정보가 나타나 있었다.
γ GEM — ALHENA
부모님의 일을 도우며 몇 번쯤 본 이름이었다. 별멎음 이전 쌍둥이자리에 해당하던 별.
“하지만 그 별자리는 사라졌을텐데.”
엘레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별들은 사라지지 않았어. 지금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어.” “그 증거는... 내가 그 빛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엘레나는 자신의 손을 들어 보였다.
손끝의 윤곽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피부 아래에서 아주 작은 빛가루가 움직였다. 빛은 손목을 지나 나침반으로 흘러들었고, 나침반 가장자리의 황동 무늬가 잠시 청록색으로 물들었다.
“적어도 너희 말로 설명하기엔 별의 정령이 가장 단순할 거야. 별빛으로 몸을 만들고, 그 빛을 바라본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생명체.”
“사람은 아니라는 거야?”
“지금은 이렇게 서 있고, 생각하고, 네 말에 대답하고 있잖아. 사람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엘레나는 잠깐 고민하다 덧붙였다.
“적어도 거대한 가스 덩어리가 직접 걸어 다니는 건 아니야. 그건 이 방에 들어오지도 못할 테고.”
4. 별빛으로 된 몸
주인공은 엘레나를 관측실 한쪽의 의자에 앉혔다. 방금 전까지 멀쩡한 척했지만 그녀의 다리는 아직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주인공이 생수병을 건네자 엘레나는 병을 이리저리 돌려 보다가 뚜껑을 열었다. 물을 한 모금 마신 뒤에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신기하네 이런 몸이여도 마실 수 있구나?”
“물을 마셔보는게 처음인거야?”
“이런 형태를 유지해 보는 건 처음이니까.”
엘레나는 나침반을 손에 쥔 채 설명을 이어 갔다.
별의 정령은 본래 고정된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몸을 이루는 별빛은 그대로 두면 안개처럼 흩어지고, 기억과 감정 역시 빛을 따라 조금씩 풀어진다.
그 빛을 하나의 형태로 묶어 주는 것이 성유물이었다.
엘레나에게는 이 나침반이, 함께 지구로 왔어야 할 동생에게는 렌즈가 그 역할을 한다.
“성유물이 몸을 만드는 거야?”
“몸을 만든다기보다, 내가 나로 남아 있도록 붙잡아 주는 거야.”
엘레나는 손가락으로 나침반의 유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별빛은 원래 한곳에 머무르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 항상 앞으로 나아가지. 이게 없으면 모양도 기억도 오래 유지하지 못해.”
“그럼 아까 손이 빛난 건?”
“오는 길에 힘을 너무 많이 썼어. 성유물의 힘을 사용한다는 건 몸을 묶고 있던 별빛 일부를 밖으로 꺼내는 일이야. 적당히 쓰면 다시 돌아오지만, 무리하면 돌아오지 못하는 빛이 생겨.”
엘레나는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말했다. 그러나 설명하는 동안에도 엄지손가락으로 손끝을 계속 문지르고 있었다.
“많이 잃으면 어떻게 되는데?”
“처음에는 몸이 흐려지고, 그다음에는 기억이 조금씩 풀려. 더 심해지면 인간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되겠지.”
“죽는다는 이야기잖아.”
“완전히 같은 의미는 아니야. 오랜 시간이 지나고 성유물이 충분한 힘을 축적하면 다시 그 힘으로 별빛이 모이고 새로운 육체를 얻을 수 있겠지.”
엘레나는 웃었지만 이번에는 그 미소가 조금 늦게 퍼졌다.
“그래도 네 입장에서는 비슷하게 보일 거야.”
주인공은 아까 엘레나를 붙잡았을 때 생겼던 빛에 관해서 물었다.
엘레나는 곧바로 답하지 않고 나침반을 들여다보았다. 나침반 가장자리에 남은 청록색 빛이 주인공을 향한 쪽에서만 유난히 밝았다.
“공명이 생긴 것 같아.”
“공명?”
“지구에서 내 형태를 확인해 준 첫 번째 관측자가 너였으니까. 내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기준이 잠시 너에게 맞춰진 거야.”
“나한테 특별한 힘이라도 있다는 뜻이야?”
“음 그건 아마 아닐거야.”
엘레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순간 여기에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커. 네가 나를 보고, 붙잡고, 엘레나라는 이름을 들었으니까.”
대단한 운명이나 선택받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예상했던 주인공은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
“조금 실망했어?”
“아니 오히려 안심되네. 내가 감당하지 못할 일에 휘말리는건 아닌가 걱정했거든.”
엘레나가 작게 웃었다.
공명은 성유물을 대신할 수 없고, 주인공과 떨어진다고 곧바로 몸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낯선 지구에서 흔들리는 별빛이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도와주는 기준점이 된다. 엘레나 역시 정확한 원리는 알지 못했지만, 주인공이 곁에 있을 때 손끝에서 빠져나가던 빛이 줄어든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5. 별들이 지구로 온 이유
“별들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별멎음 현상은 원인이 뭐야?”
주인공이 묻자 엘레나는 위로 손을 뻗으며 열린 돔을 올려다보았다.
“우리도 정확한 원인은 몰라.”
엘레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너희가 별멎음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벌어진 날, 지구로 향하던 모든 별길이 동시에 끊겼어. 별들은 이전과 똑같이 빛을 내보냈지만, 태양계 바깥에서 그 흔적이 사라지기 시작했지.”
“태양은 남아 있잖아. 태양도 별인데.”
“태양은 이미 태양계 안에 있으니까. 끊어진 건 태양계 바깥과 이곳을 연결하던 길이야. 달도 태양의 빛을 받아 비추는 거라 영향을 받지 않았고.”
그 설명은 지금까지 학계에서 내놓은 수많은 가설 가운데 하나처럼 들렸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이 실제로 사라진 별과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뿐이었다.
엘레나는 별빛이 일방적으로 지구에 도착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별을 바라보고, 이름을 부르고, 그 빛에서 이야기를 떠올리면 아주 약한 반응이 별길을 따라 되돌아온다. 정령들은 그것을 빛의 메아리라고 불렀다. 그 메아리가 쌓이며 별빛뿐이던 존재에게 인간과 닮은 기억과 인격이 생겨났다.
별멎음 이후 지구에서 돌아오던 메아리도 함께 사라졌다.
당장 모든 정령이 소멸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지구의 별자리와 이어진 정령들의 기억이 조금씩 흐려졌고, 성유물이 별빛을 묶어 두는 힘도 약해졌다.
“우리가 지구에 온 건 끊어진 별길을 조사하기 위해서야.”
“지구가 원인이라는 뜻이야?”
“그건 조사를 해보기 전까진 몰라. 우리도 원인을 찾던 중 여기까지 오게 된거고.”
엘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는 건 지구가 가장 먼저 침묵했다는 것, 그리고 끊어진 길의 흔적을 따라가면 이곳이 나온다는 것뿐이야.”
“이 천문대가?”
“정확히는 내 동생의 렌즈가 이곳을 비췄어.”
처음으로 엘레나의 목소리에 조급함이 섞였다.
“우리는 다섯 명이 함께 출발했어. 서로 다른 별과 이어진 정령들이고, 각자 다른 성유물을 가지고 있지. 원래대로라면 같은 장소에 도착했어야 해.”
“그런데 너만 떨어졌고?”
“오는 도중에 별길이 무너졌어. 정신을 차렸을 때는 네가 나를 붙잡고 있었고.”
엘레나는 나침반의 덮개를 완전히 열었다.
“긴 바늘은 목적지가 정해져야 길의 방향을 찾을 수 있어. 하지만 지금은 목적지를 비춰 줄 렌즈가 없어서 계속 맴돌고 있지.”
실제로 긴 바늘은 쉬지 않고 유리 안쪽을 돌고 있었다.
반면 짧은 바늘은 처음부터 한 방향만을 가리켰다.
“짧은 바늘은?”
“한 쌍인 렌즈를 가리켜.”
“그 렌즈를 가진 사람이 네 동생이고?”
“루시아.”
엘레나는 그 이름을 말할 때만큼은 웃지 않았다.
“쌍둥이자리 베타성 폴룩스와 이어진 정령이야. 내 동생이고, 나와 하나였던 성유물을 나눠 가지고 있어.”
엘레나의 나침반이 방향을 찾고, 루시아의 렌즈가 향해야 할 장소를 비춘다. 하나만으로는 완전한 별길을 열 수 없기 때문에 두 사람은 떨어져서는 안 됐다.
하지만 지금 루시아는 보이지 않았다.
“루시아도 오는 길에 힘을 썼을 거야. 렌즈는 목적지를 붙잡으려고 할수록 더 많은 별빛을 소모해.”
엘레나는 애써 차분하게 설명했지만 나침반을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혼자 오래 두면 위험할 수 있어.”
6. 한 사람을 찾을 때까지만
주인공은 관측실을 둘러보았다.
열린 돔, 저절로 움직인 망원경, 바닥에 남은 청록색 흔적. 어느 것 하나 혼자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경찰이나 연구기관에 연락하는 것이 가장 상식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무엇이라고 신고해야 할지부터 막막했다.
하늘에서 별의 정령이 떨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엘레나를 직접 보여 준다고 해도 그녀가 어떤 취급을 받을지는 알 수 없었다. 신원을 증명할 수 없는 데다,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존재였다.
무엇보다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루시아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그 바늘이 정말 동생을 가리키는 거라면, 지금 어디에 있는데?”
엘레나는 나침반을 수평으로 들었다.
짧은 바늘은 관측실 출입문도, 열린 돔 너머의 하늘도 가리키지 않았다.
바늘 끝은 비스듬히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위치를 옮겨도 방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관측실 중앙에서는 바닥을, 복도 쪽에서는 건물 안쪽 아래층을 향했다.
“멀리 있지는 않은 것 같아.”
엘레나가 말했다.
“이 아래에 뭐가 있어?”
“창고하고 기계실. 그리고 예전에 쓰던 정비실.”
천문대 아래층에는 부모님이 망원경 부품과 공구를 보관하던 정비 구역이 있었다. 별멎음 이후 장비를 사용할 일이 줄면서 가장 먼저 폐쇄된 장소였다. 전자 잠금장치도 작동하지 않아 최근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주인공은 잠시 고민하다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우선 동생을 찾을 때까지만 도와줄게.”
엘레나가 눈을 깜박였다.
“그다음에는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줘. 숨기는 것 없이.”
“처음부터 숨길 생각은 없었는데.”
주인공이 말없이 바라보자 엘레나는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알았어. 약속할게.”
이번에는 장난을 섞지 않은 목소리였다.
“루시아를 찾으면, 내가 알고 있는 건 전부 이야기할게.”
“그럼 가자.”
주인공은 벽에 걸린 비상용 손전등과 관리용 열쇠 꾸러미를 챙겼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작은 구급함도 꺼냈다.
엘레나는 구급함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건 뭐야?”
“사람이 다쳤을 때 쓰는 거.”
“우리한테도 효과가 있을까?”
“아까 물도 마셨잖아. 붕대 정도는 감기겠지.”
엘레나는 잠시 구급함을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주인공은 그녀가 동생의 상태를 전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7. 아래층으로 향하는 바늘
두 사람은 관측실을 나와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직원용 계단으로 향했다.
천문대의 관람 구역은 오래전에 정리되어 있었다. 벽에는 색이 바랜 별자리 안내판이 걸려 있었고, 유리 진열장 안에는 별멎음 이전에 촬영한 밤하늘 사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엘레나는 사진 앞에서 잠시 걸음을 늦췄다.
수많은 별이 찍힌 사진이었다.
“예전에는 정말 이렇게 보였어?”
“더 잘 보이는 날도 있었어.”
“너도 봤고?”
“어릴 때는. 부모님이 이 천문대를 운영하셨어서. 자주 같이 왔던거 같아.”
“어땠어?”
주인공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별빛보다 관측이 끝난 뒤 부모님과 먹었던 늦은 저녁이 먼저 떠올랐다. 돔 안의 차가운 공기와 종이컵에 담긴 따뜻한 음료, 장비를 정리하던 부모님의 뒷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솔직히 그때는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엘레나는 사진을 바라본 채 옅게 웃었다.
“늘 있던 건 사라지고 나서야 특별해지니까.”
두 사람은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휴대전화의 신호가 약해졌다. 대신 엘레나의 나침반에서 나오는 청록색 빛은 점점 선명해졌다.
짧은 바늘은 정비 구역으로 이어지는 복도 앞에서 크게 흔들렸다.
복도 안쪽은 전원이 끊겨 완전히 어두웠다. 주인공이 손전등을 켜자 먼지 쌓인 바닥과 닫힌 철문이 빛 속에 드러났다.
엘레나는 주인공보다 반걸음 앞서 걸었다. 서두르고 있었지만 뛰지는 않았다. 나침반이 흔들릴 때마다 속도를 늦추고, 방향이 맞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복도 끝에는 장비 정비실이라고 적힌 낡은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주인공이 열쇠를 꽂았지만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전자 잠금장치의 표시등도 꺼진 채였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문은 안쪽에서 무언가에 걸린 것처럼 미세하게 떨리기만 했다.
“여기가 맞아.”
엘레나가 말했다.
나침반의 짧은 바늘이 철문을 향한 채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주인공이 문틈에 손전등을 비추었다.
빛이 들어갈 틈조차 없어야 할 문 아래에서 아주 희미한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안쪽에서 작은 금속 물체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엘레나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가 철문 가까이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루시아.”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문 아래의 푸른빛이 엘레나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처럼 한 번 밝아졌다.
주인공은 손전등을 내려놓고,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배웠던 수동 개폐 장치의 위치를 더듬었다.
천문대를 정리하러 왔던 마지막 여름밤.
별이 사라진 뒤 줄곧 닫혀 있던 정비실 안에서, 또 하나의 별빛이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었다.